출산지원금 120만 원 이후, 자녀 양육에 대한 구조적 침묵
지난 2022년 11월 8일 서울 여의도 이룸센터 앞에서 열린 ‘제21회 한국여성장애인대회’에서 여성장애계의 염원인 장애여성지원법 제정을 촉구하고 있다. ⓒ에이블뉴스DB
【에이블뉴스 이정주 칼럼니스트】 세계여성의 날(3월 8일)을 맞이하여 문득 우리나라 ‘장애가 있는 여성(women with disabilities)’은 양육하고 부모 역할을 수행하는데 어려움이 없을까. 여성장애인의 부모됨(Right to Parenthood)에 관하여 궁금해졌다.
저출산 시대 임신과 출산과 함께 아이를 키우는 일은 더이상 개인의 선택이 아니고, 사회와 국가의 과제가 된 이 시대, 장애가 있는 여성은 어떠한 지원을 받고 있는지 말이다.
다행히 우리나라도 여성장애인의 모성권은 법적으로 존재하고 있었다. 헌법 제36조 모성보호를 시작으로 「장애인복지법」 제52조는 여성장애인의 모성보호를 규정하고 있고, 유엔 장애인권리협약(UN CRPD)도 여성장애인의 권리와 결혼, 가족 형성, 그리고 부모 역할을 수행할 권리를 명확히 말하고 있었다.
그런데 현실을 들여다보니 법 제도와 삶 사이의 거리가 멀어 보인다.
한국에서 여성장애인만을 위한 모성 관련 지원을 찾아보면 눈에 띄는 것은 출산시 지원하는 비용 120만 원 정도가 전부에 가깝다. 물론 지원의 액수가 문제의 핵심은 아니다. 더 중요한 것은 정책의 관점이다.
여성의 부모됨(Right to Parenthood)은 단지 출산한 사건에만 해당하지 않는다. 임신과 출산의 모성권과 함께 양육은 하나의 긴 시간의 과정이다. 아이를 낳는 일은 하루의 일이지만, 부모가 되는 일은 적어도 20년의 시간이다. 장애가 있는 여성은 그러한 과정에서 비장애인에 비해 더 많은 어려움이 있을 것으로 보인다. 그런데 한국 여성장애인의 양육을 지원하는 제도는 여전히 출산이라는 단 한순간에만 반응하고 있다.
문제는 바로 그 이후다.
출산 이후의 양육과 돌봄, 부모 역할 수행을 가능하게 하는 사회적 구조는 거의 보이지 않는다. 2024년 장애인실태조사에서도 이러한 현실은 분명하게 드러난다. 결혼과 출산 연령대에 해당하는 여성장애인들이 가장 많이 요구한 것은 단순한 출산 지원이 아니었다. 여성장애인 응답자가 원한 것은 아이를 키우는 과정에서의 지원이었다.
육아 활동을 지원할 수 있는 활동지원사 배치, 임신과 출산에 대한 건강관리 프로그램, 접근 가능한 정보 제공, 장애 특성을 고려한 양육 지원 서비스 등이 그것이다.
다른 나라들은 이 문제를 어떻게 바라보고 있을까.
스웨덴은 장애가 있는 부모가 부모 역할을 수행할 수 있도록 강력한 개인보조서비스제도를 운영하고 있다. 장애가 있는 부모에게 필요한 지원 인력이 제공되어 일상생활뿐 아니라 양육 활동까지 가능하도록 돕는다. 여기서 중요한 것은 국가가 부모가 되는 능력을 판단하지 않는다는 점이다. 대신 부모 역할을 수행할 수 있도록 사회가 필요한 지원을 제공한다.
호주는 국가장애보험제도(NDIS)를 통해 장애가 있는 부모가 임신과 출산, 양육 과정에서 필요한 지원을 맞춤형 서비스로 설계할 수 있도록 한다. 영국 역시 개인예산제도를 통해 장애가 있는 부모가 양육에 필요한 서비스를 직접 선택하고 활용할 수 있도록 허용한다.
미국에서는 장애인의 부모 역할을 차별로부터 보호하는 법적 기반이 이미 마련되어 있다. 일부 주에서는 장애가 있는 부모가 양육 활동을 수행할 수 있도록 지역사회 기반 서비스가 제공되고 있다.
이들 국가의 공통점은 출산을 지원하는 것이 아니라 부모 역할을 가능하게 하는 구조가 있다는 것이다. 우리나라의 정책이 출산이라는 ‘하나의 사건’에 반응한다면 다른 나라의 정책은 ‘부모 역할 수행’이라는 긴 시간에 주목하고 있음을 보게된다.
출산 시 지원하는 것과 부모가 되도록 돕는 것은 전혀 다른 문제다. 따라서 출산시 지원하는 120만원이 문제가 아니라 이 제도밖에 없다는 우리 사회의 여성장애인 부모됨에 대한 구조적 침묵이다. 우리나라도 여성장애인 모성정책은 ‘출산정책’에 머물러 있지 말고, 아직 ‘부모 되는 정책(Disabled Parenthood Policy)'으로 나아가야 할 때로 보인다.
한국의 장애인복지는 지난 수십 년 동안 빠르게 성장했다. 하지만 그 성장의 이면에서 여성장애인의 삶은 여전히 정책의 사각지대에 머물러 있다.
최근 시민사회에서는 여성장애인법 제정을 요구하는 목소리가 나오고 있다. 그리고 현재 국회에는 장애인을 대표하는 네 명의 국회의원이 있다. 모두 여성이다. 지금이야말로 여성장애인의 모성권을 제도적으로 다시 설계할 수 있는 중요한 순간이다.
장애가 있어도 안전하고 존엄하게 엄마로서 역할을 다 할 수 있는 사회. 그것은 특정 집단을 위한 특별한 권리가 아니다. 오히려 한 사회가 인간의 기본권을 어디까지 보장할 수 있는지를 보여주는 가장 분명한 기준이다. 그래서 기본사회를 주창하는 이번 정부가 기대되는 이유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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