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제3자 녹음금지 예외적용을 통한 학대피해 장애인 권리보장 대책위원회(이하 대책위)가 22일 대법원 앞에서 기자회견을 열고, 학대피해 장애인 권리 보장을 위한 제3자 녹음금지 예외를 인정해달라고 호소했다. 발언 중인 국민의힘 김예지 의원.ⓒ전국장애인차별철폐연대
【에이블뉴스 이슬기 기자】"자기방어를 전혀 할 수 없는 학대피해자에 대해서는 녹음금지에서의 예외를 인정해야 합니다"
'제1회 장애인학대 예방의 날'인 22일, 서울 서초구 대법원 앞에서 전국장애인부모연대, 장애인차별금지추진연대 등 10개 단체가 모인 제3자 녹음금지 예외적용을 통한 학대피해 장애인 권리보장 대책위원회(이하 대책위)가 학대피해 장애인 권리 보장을 위한 제3자 녹음금지 예외를 인정해달라고 호소했다.
현재 대법원에는 자폐성 장애아동 학대 의심 상황에서 피해 아동의 어머니가 자녀 가방에 녹음기를 넣어 교실 내 발언을 녹음한 행위가 통신비밀보호법 위반에 해당하는지를 다투는 사건, 일명 '용인 장애아동 학대 사건'이 계류 중이다.
해당 녹음파일에는 특수교사가 자폐성 장애아동에게 한 “버릇이 매우 고약하다. 너를 얘기하는 거야. 아휴 싫어, 싫어, 죽겠어, 싫어. 너 싫다고. 나도 너 싫어, 정말 싫어”라는 발언이 명백히 담겨져 있다.
1심 재판부는 자폐성 장애아동이 스스로 학대에 방어하기 어려운 점, 공교육 현장에서 녹음으로 침해되는 사생활의 비밀보다 녹음을 통해 보호할 수 있는 이익이 상대적으로 크다는 점 등을 고려해 녹음파일의 증거능력을 인정했고, 해당 발언을 정서적 학대로 봤다.
반면 2심에서는 해당 녹음이 통신비밀보호법 제14조 제1항에 위반된다고 보아 녹음파일의 증거능력을 부정했고, 그 결과 해당 발언과 정서적 학대 여부는 충분히 판단되지 못한 채 무죄가 선고된 바 있다.
대책위는 "이 사건은 단순히 ‘녹음이 가능한가’의 문제가 아니"라면서 "학대를 당해도 이를 말로 표현하거나 증거를 직접 남길 수 없는 발달장애아동·중증장애인·치매노인에게 보호자의 녹음은 사실상 유일한 피해 입증 수단"이라고 강조했다.
현행 통신비밀보호법 제14조 제1항은 '공개되지 아니한 타인 간의 대화'를 녹음하는 행위를 원칙적으로 금지하며, 동법 제4조는 이를 위반해 수집된 증거를 재판에서 사용할 수 없도록 규정하고 있다.
이에 국민의힘 지난해 11월 김예지 의원은 학대에 취약한 중증장애인 등의 학대사건이 발생했을 때 학대행위 입증을 위해 제3자 대화 녹음을 허용하고 증거능력이 인정되도록 하는 장애인복지법 등을 발의한 바 있다.

대법원 앞에 '자기방어를 전혀 할 수 없는 학대피해자에 대해서는 녹음금지에서의 예외를 인정해 주십시오!' 라는 현수막이 크게 걸려있다.ⓒ전국장애인차별철폐연대
이날 기자회견에 참석한 김예지 의원은 "자신이 학대받고 있음을 인지하고 스스로 방어하기 어려운 장애아동 등이 피해 사실을 증명할 최소한의 수단이 사라진다. 획일적인 통신비밀보호법 적용보다는 학대를 증명하기 위한 목적으로 제3자가 녹음할 경우 예외적으로 인정할 수 있는 기준 마련이 필요하다"면서 "관련 개정안을 대표발의했을때 여야를 막론하고 18명의 의원들이 함께 해주신만큼 문제 의식에 대한 공감대는 충분히 형성됐다고 생각한다. 사법부도 학대 피해자의 안전과 권리 그리고 실질적인 방어권 보장의 중요성을 충분히 고려해주시길 간곡히 부탁드린다"고 말했다.
학대피해 당사자 부모는 "누군가 자신을 해쳐도 스스로 기록하거나 증언할 능력이 없는 경우가 많다. 그 순간을 말로 증언할 수 없는 발달장애인을 지킬 수 있는 방법은 무엇이냐"면서 "말할 수 없는 사람들이 혼자 남겨지지 않도록 끝까지 함께 하겠다"고 말했다.
윤종술 전국장애인부모연대 회장도 "'예', '아니도'도 구분할 수 없는 자기 의사표현이 힘든 중증장애인이 차별을 당했을때 증거를 찾지 못하면 자기권리를 찾기 힘든 것이 대한민국의 실태"라면서 "기본적인 권리를 찾을 수 있도록 판결해달라"고 호소했다.
대책위는 성명서를 통해 "피해자가 말할 수 없고 보호자가 확인할 방법도 없는 상황에서, 보호 목적의 녹음까지 일률적으로 배제하는 것은 결국 가장 약한 사람에게 '증명하지 못하면 피해도 없다'고 말하는 것과 다르지 않다"면서 "우리의 요구는 교사와 종사자를 적대시하기 위한 것이 아니다. 학교와 돌봄 현장의 어려움을 부정하기 위한 것도 아니다. 그들의 권리 역시 마땅히 존중되어야 한다. 그러나 그 권리가 자기방어조차 어려운 피해자의 안전과 존엄, 그리고 피해를 확인할 최소한의 권리까지 부정하는 근거가 되어서는 안 된다"고 밝혔다.
구체적으로 대법원에 보호자가 학대 피해를 확인하기 위해 불가피하게 확보한 녹음파일의 증거능력이 배제되지 않도록 판단하고, 피해자를 보호하기 위한 녹음에 대한 증거능력을 인정할 수 있는 예외적 법리를 명확히 제시할 것을 촉구했다.
한편 법률가 112명은 대법원에 의견서를 제출해 "이 사건은 우리 사회가 학대 피해를 입기 쉬운 이들을 어떻게 지켜낼 것인가에 관한 기준을 세우는 중대한 계기"임을 강조하고, 자기방어가 어려운 피해자를 구제하기 위한 헌법합치적 해석을 촉구한 바 있다.
대책위는 기자회견을 마친 뒤 대법원에 녹음 증거를 인정해 달라는 내용이 담긴 의견서를 제출했다. 온라인 탄원 서명 https://forms.gle/MBX7qACFDrPRjmfL9(주소 클릭)을 받고 있으며, 현재 2만여명이 참여할 것으로 알려졌다. 다음달인 7월 기자회견을 열고 대법원에 제출할 예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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